10월 27일 오후, S대 학부 창업 수업에 외부 멘토로 다녀왔습니다. 9주차 주제는 고객 인터뷰 결과 리뷰였습니다. 네 팀이 그동안 만나고 온 고객 이야기를 발표하고, 멘토 두 명이 질문과 코멘트를 얹는 자리였습니다.
아이템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안경원, 대학생 일정 관리 AI, 주짓수 도복 세탁, 중고 육아용품. 공통점은 하나였습니다. 네 팀 모두 진짜로 사람을 만나고 왔다는 것. 그래서 질문도 "고객을 만나 보셨어요?"가 아니라 "그다음에 무엇을 물어야 할까?"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 2시간 동안 제가 던진 질문과 함께 나온 이야기를 정리한 후기입니다. 학생과 팀이 드러나지 않도록 팀명 대신 아이템으로만 적었습니다.

"좋아요, 쓸게요"라는 말보다 중요한 건 하나입니다. 그 문제를 풀려고 고객이 지금 무엇을 하고, 얼마를 쓰고 있는가.
🎬 이날 수업은 어떻게 흘러갔나?
발표 순서는 사다리 타기로 정했습니다(한 팀은 급한 일정이 있어 순서를 바꿨습니다). 팀마다 15분 발표, 15분 리뷰입니다. 리뷰 순서도 재밌습니다. 멘토보다 다른 팀 학생들이 먼저 "어떻게 들었는지"를 말합니다. 그다음 멘토 두 명이 코멘트하고, 마지막에 교수님이 정리합니다. 교수님은 우리 두 멘토를 "피벗과 탐색 과정에 특화된 분들"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그 말 덕분에 학생들이 날 선 질문을 각오하고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아이템 | 인터뷰 | 지금까지 바뀐 것 |
|---|---|---|
| 안경원 정보 링크 서비스 | 손님 7명 + 안경원 6곳(13회) | '외부에서 산 테를 가공해 줄 곳 찾기'에서 '안경원용 링크 한 장'으로 방향 전환 |
| 대학생 일정·프로젝트 관리 AI | 9명 + 웹 MVP 체험 | 기능을 늘렸더니 오히려 복잡해졌다는 피드백을 받고 핵심 동작 위주로 정리 중 |
| 주짓수 도복 수거·세탁 대행 | 수련자 5명 | 도장에 수거함을 두고, 셀프 빨래방의 빈 시간대를 빌리는 구조 설계 |
| 등급 인증 중고 육아용품 위탁판매 | 부모 8명 | 입에 닿는 용품은 접수하지 않기로 하고, 고가·대형 용품으로 좁힘 |
💬 네 팀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나?
Q1. 20년째 같은 안경점에 가는 사람은 왜 안 바꿀까?
한 줄 답: 안경은 '현장에서 맞춰 보는' 경험이 강한 상품입니다. 그 습관을 깨고 온라인에서 먼저 찾아보는 고객이 정말 누구인지부터 확인하세요.
첫 팀은 안경원 사장님이 진열 사진 몇 장만 찍으면 브랜드·가격 구간·외부 테 가공 가능 여부를 담은 '링크 한 장'을 만들어 주고, 손님은 지도에서 그 링크를 보고 찾아오게 하는 서비스를 발표했습니다. 손님은 가공 문의 전화를 두세 번에서 한 번으로, 사장님은 매달 쓰던 홍보비를 구독료 하나로 줄인다는 계산입니다. 원래는 손님을 안경원에 연결해 주는 모델이었는데, 그게 법상 '알선'에 걸릴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정보 제공까지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가족이 운영하는 안경원 인터뷰는 '연고'라고 따로 표시했는데, 이런 정직함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저는 듣는 내내 제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안경점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 번 맞춰 본 곳, 내 눈을 아는 곳이니까요. 어느 유튜브 콘텐츠에서는 '잘 망하지 않는 소상공인 업종 1순위'로 안경점을 꼽기도 했습니다. 동네에서 단골만 잡으면 고객이 잘 떠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숙제로 드렸습니다.
- 온라인으로만 안경을 사는 고객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있다면 그분들의 구매 경험에 우리가 모르는 인사이트가 있을 겁니다.
- 온라인 판매를 잘하는 안경원이 있는지도 찾아보세요. 있다면 그 가게가 공략하는 고객이 바로 우리 고객 후보입니다.
함께한 멘토님은 고객을 너무 넓게 잡았다는 점,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처럼 '한국에 오기 전에 온라인으로 미리 고를 수밖에 없는' 고객군을 짚었습니다. 발상을 바꾸면 그런 고객이 오히려 가장 절박한 첫 고객일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 한 문장으로 정리하셨습니다. "한 명이라면 누굴까요?"
Q2. 그 불편을 없애려고 지금 뭘 하고 있나요? 혹시 AI로 직접 풀고 있진 않나요?
한 줄 답: "써 볼게요"라는 사용 의사보다, 고객이 이 문제를 풀려고 이미 들이는 노력과 대안을 먼저 확인하세요. 요즘은 고객이 AI로 스스로 해결하고 있는지도 꼭 물어봐야 합니다.
두 번째 팀은 수업, 동아리, 팀플을 동시에 굴리는 대학생을 위해 자연어로 일정을 넣으면 달력·메모·할 일을 한곳에 모아 주는 AI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카톡에 메모했다가 노션에 다시 옮기는 '재입력'의 불편을 인터뷰로 확인했고, 웹 MVP 체험에서 "버튼이 너무 많다"는 쓴소리도 받아 왔습니다.
이런 아이템은 해결이 안 된다고 큰 피해가 나지는 않습니다. 대신 하루에도 여러 번 작은 불편을 줍니다. 그래서 더더욱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불편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뭔가를 하고 있을 겁니다. 다른 앱을 찾아 헤매거나, 알림을 겹겹이 걸어 두거나, 아예 AI로 자기만의 해결책을 만들거나요.
고객개발 방법론을 만든 스티브 블랭크도 요즘 강조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고객이 이 문제를 AI로 직접 해결할 수 있는가?" 실은 제가 그렇게 삽니다. 클라이언트마다 프로젝트 관리 도구가 다 달라서 한곳에 모을 방법이 없던 게 제 큰 스트레스였는데, 요즘은 캘린더와 업무 도구를 MCP로 AI에 연결해 두고 "지금 프로젝트 상태 정리해 줘", "다음 주에 비는 시간 보고 새 미팅 언제가 좋을지 제안해 줘"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해결하는 고객에게 새 일정 앱이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다음 인터뷰에서 꼭 물어보셨으면 하는 질문입니다.
함께한 멘토님은 무료 도구를 열심히 조합해 쓰는 사람은 이 불편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 이 서비스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인지 대체 가능한 것인지를 짚었습니다. 교수님은 "불편하다"는 현상만 모으지 말고, 그 원인까지 파고들라고 하셨습니다. 서비스가 불편한 건지, 일하는 방식이 문제인 건지에 따라 해법이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Q3. 불편을 대신 해결해 주면 다들 좋아합니다. 그런데 돈이 남나요?
한 줄 답: 세탁·물류형 서비스는 매출보다 비용이 먼저 커지기 쉬운 구조입니다. 오늘 당장 한 사이클을 직접 돌려 보고, 원가를 계산한 가격에도 고객이 맡기는지 확인하세요.
세 번째 팀은 팀원이 주짓수를 하다 겪은 불편에서 출발했습니다. 땀에 젖은 무거운 도복을 책가방에 넣고 지하철을 타면 가방에 냄새가 배고, 집에 가서 빨고 말리는 데 몇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도장에 수거함을 두고, 도복을 넣고 가면 세탁해서 다음 수업 전에 도장으로 돌려주는 서비스를 설계했습니다. 수련자 5명 모두 냄새·부피·건조 시간 문제를 몇 년째 겪고 있었고, 월 2~3만 원 구독이나 회당 5천~1만 원이면 쓰겠다고 답했습니다. 예전에 비슷한 서비스를 하던 체육관이 있었다는 사실도 찾아냈습니다.
리뷰 시간에는 뜻밖의 논쟁도 붙었습니다. 태권도를 해 본 학생은 "태권도복은 가벼워서 잘 안 빨아도 된다"고 했고, 교수님은 "주짓수복은 몸에 밀착되니 상대 피부까지 생각하면 꼭 빨아야 한다"고 받으셨습니다. 도복의 세계도 이렇게 다릅니다.
제 코멘트는 단순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불편을 누가 대신 해결해 주면 정말 좋아합니다. 거기까지는 쉽게 확인됩니다. 관건은 매출보다 비용이 더 커지는 구조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탁 대행은 운영 효율과 규모의 경제가 갖춰져야 남는 사업이라 흑자까지 오래 걸리는 어려운 시장입니다. 그래서 가장 빠른 검증을 권했습니다.
- 도장 앞에서 "싸게 빨아 드릴게요" 하고 직접 수거합니다.
- 근처 셀프 빨래방에서 내 돈으로 빨고 말려서 다음 수업 전에 갖다줍니다.
- 한 사이클에 든 재료비·이동 시간·인건비를 전부 계산합니다.
- 그 원가를 반영한 가격을 불렀을 때 "그래도 맡길게요"면 사업이 되고, "그냥 제가 빨게요"면 안 되는 겁니다.

교수님은 기회비용도 꺼내셨습니다. 여러분 같은 인재가 취업하면 받을 월급이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하는 일이라면 그보다 더 벌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전에 비슷한 서비스를 하던 체육관은 왜 지금은 안 하는지, 그 이유부터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함께한 멘토님은 비싼 도복이 세탁 중에 상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Q4. 수거한 물건이 안 팔리면, 누구 창고에 쌓이나요?
한 줄 답: 물건을 사들여서 파는 구조라면 재고와 현금 회전이 사업의 명줄입니다. 고객개발로 '빨리 팔리는 품목'을 찾고, 관리할 수 있는 기간에서 거꾸로 계산해 품목을 좁히세요.
마지막 팀은 포켓몬 카드에 등급을 매기듯 중고 육아용품에 S·A·B·C 등급을 매기고, 세척·살균한 뒤 대신 팔아 주는 서비스를 발표했습니다. 팀 조사에 따르면 신품 193만 원짜리 유모차가 중고 직거래에서 3만 원에 팔린 사례도 있었습니다. 부모 8명을 인터뷰하면서 아주 좋은 발견을 했습니다. 젖병이나 턱받이처럼 아이 입에 닿는 용품은 세척해 줘도 중고로 사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이런 품목은 아예 접수하지 않고, 유모차·카시트처럼 비싸고 큰 용품으로 좁혔습니다. 말로 듣고 끝내지 않고 사업 범위를 바꾼 점이 좋았습니다.
걱정되는 지점은 운영이었습니다. 수거 → 검수·등급 → 세척·살균 → 대행 판매 → 정산 흐름에서, 수거한 물건을 회사가 사들이는(매입) 구조라면 결국 재고를 안고 가게 됩니다. 원하는 타이밍에 안 팔리면 악성 재고가 되고, 창고비와 보관료가 쌓이고, 돈이 묶여서 새 물건을 사들일 수 없게 됩니다. 실제로 이런 모델을 했던 팀들이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다음 고객개발에서는 이렇게 물어보시라고 했습니다.
- 사들여서 다시 팔기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기간은 며칠인가?
- 그 기간 안에 팔리는, 회전율 높고 선호도 높은 품목은 무엇인가?
- 그 품목부터 시작하면 운영을 더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한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멘토님의 코멘트는 생생했습니다. 예전에 200만 원이 넘는 유모차를 물려받았다가 결국 무료로 나눔했고, 팔아 볼까 하고 비슷한 매물을 살펴보니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안 팔리고 있더라는 경험담이었습니다. "S급은 안 쓴 것"이라는 부모의 현실적인 기준, 그리고 안전 점검과 수리까지 해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가설도 덧붙였습니다. 교수님은 정보가 비대칭인 중고 시장에서 신뢰를 어떻게 증명할지 다시 생각해 보라며 한마디 보태셨습니다. "193만 원짜리를 3만 원에 판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다음 인터뷰 대상이 정해진 것 같습니다.
🔍 네 팀에서 공통으로 보인 것은?
아이템은 달라도 다음 단계에서 막히는 지점은 비슷했습니다. 네 팀에 드린 이야기를 모으면 이렇습니다.
- 말보다 행동을 모으세요. "쓰겠다", "돈 내겠다"는 답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지금 그 문제를 풀려고 무엇을 하고, 얼마를 쓰고, 무엇을 포기했는지가 진짜 증거입니다.
- 고객을 한 명으로 좁히세요. 손님과 사장님, 판매자와 구매자처럼 양쪽을 다 봐야 하는 아이템일수록 첫 고객은 더 뾰족해야 합니다.
- 불편 해결과 사업은 다릅니다. 원가, 물류, 재고까지 한 사이클을 돌려 봐야 돈이 남는지 알 수 있습니다.
- AI 시대의 새 질문을 추가하세요. 고객이 이 문제를 AI로 직접 풀 수 있다면, 우리 서비스가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 다음 멘토링까지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
이 수업은 같은 팀을 한 학기에 여러 번 만납니다. 다음 멘토링은 11월 17일, 최종 발표는 12월입니다. 그때까지 네 팀 모두 이것만은 들고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고객 한 명당 '최근 한 달의 행동' 3가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실제로 한 일, 쓴 돈, 쓰다 그만둔 도구.
- 한 명짜리 고객 정의: "대학생", "부모"가 아니라 "주 3회 이상 수련하고 대중교통으로 귀가하는 대학생 수련자"처럼 상황까지.
- 한 사이클 원가표: 직접 한 번 해 보고 계산한 재료비·시간·인건비와, 그 가격에 대한 고객의 반응.
- AI 대체 질문 1개: "이 문제, 지금 AI로 해결해 보신 적 있으세요?"를 다음 인터뷰 질문지에 추가.
✅ 창업 수업을 운영한다면 무엇을 참고하면 좋을까?
- 동료 피드백을 먼저: 멘토보다 다른 팀 학생이 먼저 소감을 말하게 하면, 학생들이 남의 발표를 '내 팀 이야기'로 듣습니다. 고객 입장에서 나오는 학생들의 생활 감각(안경, 태권도복, 일정 앱)이 멘토 코멘트만큼 날카로울 때도 많습니다.
- 관점이 다른 멘토 두 명: 투자·고객개발 관점과 현장 운영 관점이 함께 들어가니 한 아이템을 양쪽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 같은 팀을 여러 번 만나는 연속 멘토링: 10월 리뷰 → 11월 재점검 → 12월 최종 발표처럼 이어지면, 지난번 질문에 팀이 어떻게 답해 왔는지로 성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학 창업 수업의 고객개발 리뷰, 실험실 창업팀 멘토링, 기관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까지 단계와 목적에 맞춰 함께 설계합니다. 투자자로서 실제 투자 검토를 하고, 한국형 I-Corps 인스트럭터로 고객개발을 가르치고 있어 두 관점을 함께 드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단체 사진이었습니다. 팀별로 한 번씩 나와 포즈를 잡았는데, 중간에 "주짓수 포즈 한번 할까요?"라는 제안까지 나왔습니다. 11월 17일에 다시 만날 네 팀의 다음 인터뷰가 벌써 기대됩니다.
핵심 요약: 10월 27일 S대 학부 창업 수업 9주차에서 네 팀의 고객 인터뷰 결과를 리뷰했습니다. 안경원 링크 서비스에는 '20년째 안경점을 안 바꾸는 이유'를, 일정 관리 AI에는 '고객이 이미 하는 노력과 AI 자가 해결'을, 도복 세탁 대행에는 '한 사이클 원가'를, 중고 육아용품 위탁에는 '재고와 회전율'을 물었습니다. 공통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고객의 말보다 행동을 모으고, 고객을 한 명으로 좁히고, 돈이 남는지까지 직접 돌려 보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