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오전, S대에서 대학원생 한 명과 46분 동안 마주 앉았습니다. 게임회사 시절 같은 사무실을 쓰던 인연이 있는 교수님이 "창업에 관심 많은 학생이 있다"며 자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인공은 AI 분야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 진학을 앞둔 학생입니다. 창업에 관심은 많은데 아이템은 아직 없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고 했습니다.
시작부터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웬만하면 창업을 권하는 편이 아닙니다. 창업 교육을 하고 투자도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의외였을 겁니다. 그래도 학생의 질문은 하나하나 진지했고, 정신 차려 보니 제가 40분을 혼자 떠들고 있었습니다. 대학원생이라면 한 번쯤 해 봤을 고민이라, 질문과 제 답을 정리해 둡니다. 학생이 드러나지 않도록 개인 정보와 연구 세부 내용은 뺐습니다.

공부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지만, 창업은 타이밍이 와야 합니다. 그 타이밍이 지금인지는 작게 부딪혀 봐야 압니다.
💬 대학원생은 창업에 대해 무엇을 물어봤나?
Q1. 박사를 마치고 창업해야 할까요, 박사를 하면서 도전해야 할까요?
한 줄 답: 둘 중 하나를 미리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병행하면서 작게 검증해 보고, 신호가 오면 그때 고르세요.
편하게 말하면 공부는 나이를 먹어서도 할 수 있는데, 창업은 나이 먹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창업은 '내 타이밍'이 와야 합니다. 그게 지금일지, 박사를 마친 뒤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병행하다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해 보니 창업은 지금이 아닌 것 같다면 공부에 집중하면 됩니다. 반대로 "지금이다,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신호가 오면 박사과정을 잠시 멈추거나, 지도교수님과 상의해 수업(코스워크)만 먼저 마치고 논문은 천천히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정답은 본인 상황에 있습니다.
Q2. 기술력부터 확보해야 지원사업에 도전할 수 있나요?
한 줄 답: 아닙니다. 기술은 하면서 확보하는 겁니다. 특히 소프트웨어·AI 분야라면 지금 가진 연구를 구체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분야라면 장비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AI는 프로그래밍 영역입니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도 충분합니다. 요령도 하나 알려 드렸습니다. 그동안 공부하고 연구한 자료를 AI에 몽땅 넣고 "이 연구를 바탕으로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실험실 창업 지원사업에 낼 수 있게 구체화해 줘"라고 시켜 보는 겁니다. 사업계획서 초안이 생각보다 빨리 나옵니다. 물론 그 초안이 맞는지는 고객을 만나서 확인해야 합니다.
Q3. 대학원생이 밟을 수 있는 창업 경로에는 무엇이 있나요?
한 줄 답: 학교 창업 수업과 창업지원단 → 대학별 '미니 텍스코어' → 텍스코어(실험실창업탐색팀) 순서로 작게 시작해 보세요. 확신이 생기면 그다음에 사업화 지원사업으로 넘어가면 됩니다.
석·박사 과정생에게 딱 맞는 사업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이 운영하는 「공공기술기반 시장연계 창업탐색 지원사업」의 실험실창업탐색팀, 흔히 '텍스코어'입니다. 연구실 기술이 시장에서 통할지 고객 인터뷰로 검증하는 프로그램으로, 저도 이 프로그램에서 인스트럭터로 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2026년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항목 | 2026년 기준 내용 |
|---|---|
| 신청 자격(예비창업대표) | 대학 석·박사 과정 재학생(휴학생 가능), 박사후연구원 |
| 공고·접수 | 2025년 12월 18일 ~ 2026년 1월 19일 18시(마감) |
| 평가·선정 | 3월 발표평가 → 4월 선정 |
| 교육 | 4~6월 기초창업탐색교육, 7월 실전교육(해외교육형은 미국 현지에서 NSF I-Corps 방식 교육·미국 고객 인터뷰) |
| 창업보육 | 8~12월 멘토링과 MVP 제작용 창업탐색비 지원(교육 결과에 따라 차등) |
| 팀당 지원금(대학) | 국내교육형 약 4,600만 원 · 해외교육형 약 6,200만 원 내외 |
출처: 「2026년도 공공기술기반 시장연계 창업탐색 지원사업 신청 안내서 – 실험실창업탐색팀」(2025.12.) 및 같은 사업의 접수결과·선정평가 계획(2026.3.). 위 표는 2026년도 사업 기준입니다. 2027년도 일정과 금액은 해마다 바뀔 수 있으니 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 공고를 꼭 확인하세요.
본 사업 전에 연습할 기회도 있습니다. 여러 대학이 텍스코어 지원을 앞둔 팀을 위해 짧게 미리 경험해 보는 '미니 텍스코어'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모집 시기는 대학마다 다르니 "미니 텍스코어"로 검색해 소속 지역·대학 공고를 찾아보세요. 팀은 보통 두세 명이 함께 꾸리니, 함께할 사람과 지도교수님과도 미리 이야기해 두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학교 창업지원단이 있습니다. "이런 학생인데 지금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뭐가 있나요?"라고 찾아가 물어보세요. 학교 창업 수업도 한 학기만이라도 들어 보길 권했습니다. 창업이 어떤 건지 한 학기 동안 길게 보여 주니까요. 이렇게 경험을 쌓고 확신이 생기면 그다음에 청년창업사관학교 같은 사업화 지원사업으로 넘어가면 됩니다.

Q4. 특허는 학교 이름으로 내야 하나요, 개인으로 내야 하나요?
한 줄 답: 학교 특허는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나중에 창업할 때 권리를 넘겨받는 조건을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특허를 내려면 출원 비용이 듭니다. 학교가 비용을 대고 학교 이름으로, 또는 학교와 공동으로 내는 방법이 있고, 창업지원단 프로그램을 통하면 특허 지원비가 나오기도 합니다. 문제는 나중입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려면 그 특허의 권리를 넘겨받아야 하는데, 이때 학교가 매출의 몇 퍼센트 같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몇십만 원 지원해 준 걸로 왜 이걸 떼어 가느냐"는 불만이 생기고, 실제로 학교와 창업자 사이에 분쟁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출원하기 전에 창업지원단에서 조건을 꼭 상담받아 보세요.
Q5. 아이디어가 아직 모호한데, 어떻게 구체화하나요?
한 줄 답: '개인'이 아니라 한 문장으로 그릴 수 있는 고객부터 정하세요. 그리고 아직 없는 시장보다 이미 돈이 오가는 시장에서 반 보만 앞서세요.
학생의 아이디어는 이랬습니다. 앞으로 누구나 자기만의 AI 에이전트를 갖게 되면, 사람마다 가진 지식과 데이터를 사고파는 시장이 열리지 않을까? 흥미로운 상상입니다. 그런데 고객을 물었더니 "개인"이라고 답했습니다. 개인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전 국민이 쓰는 배달앱도 처음부터 전 국민을 겨냥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를테면 "강남·홍대 근처에 혼자 사는 직장인 중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배달을 시키는 사람"처럼 뾰족하게 시작하는 겁니다. 데이터 거래라면 데이터를 꼭 팔아야 하는 사람과 꼭 사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이 불편한지를 아주 좁게 정리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또 하나. 개인 간 데이터 거래 시장은 아직 없는 시장입니다. 언젠가는 열리겠지만 법과 제도가 먼저 정비돼야 하고, 거기까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뉴스에 다들 놀라지만, 그게 내 출근길에 오기까지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미 기업 간에 데이터가 거래되는 시장에서 문제를 찾아보라고 권했습니다. 한두 발 앞서기보다 반 보 앞서는 것, 사람들이 이미 쓰는 것을 더 편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출발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숙제를 드렸습니다. 많은 창업자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급하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많이 실패합니다. 그 시장에서 누가 플레이어인지, 누가 경쟁자인지, 각자 무엇이 강하고 약한지를 적어도 6개월은 탐색해 보세요. 그래야 이 시장이 내가 해 볼 만한 곳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공부할 시간이 많은 때이니, 연구도 창업 방향에 맞춰 두면 일석이조입니다.
Q6. 창업하면 많이들 포기하나요?
한 줄 답: 네, 많이 포기합니다. 그래서 창업은 3~5년 동안 젊음과 열정을 태울 준비가 됐는지부터 따져 봐야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5년을 버티는 팀이 열에 셋 정도입니다. 포기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돈을 못 벌어서. 둘째, 팀 안의 불화. 셋째, 자금이 떨어져서. 그런데 셋째도 결국은 돈을 못 벌어서입니다.
창업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입니다. 내 고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고, 고객은 맞는데 원하는 기능이 다르고. 그렇게 방향이 바뀔 때마다 시간과 돈, 즉 런웨이가 줄어들고 결국 지칩니다.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Q7. 함께할 팀원은 어떻게 구하나요?
한 줄 답: 목표에 따라 다릅니다. 먹고사는 수준이라면 1인 기업도 좋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반드시 팀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사람 관리가 어렵다는 것도 각오해야 합니다.
요즘은 AI 덕분에 1인 기업이 많이 늘었습니다. 내가 먹고사는 수준을 목표로 한다면 1인 기업도 아주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토스 창업자처럼 세상에 큰 변화를 주고 싶다면 혼자서는 절대 못 합니다. 학교 팀플도 답답할 때가 많은데, 창업은 돈과 생존이 걸린 팀플입니다. 처음엔 웃으며 일하다가 나중엔 서로 원망하게 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창업하다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일도 흔합니다. 내가 이런 관계를 감당할 성향인지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Q8. 돈이 되는 감각, 사업 감각은 어떻게 기르나요?
한 줄 답: 창업 방법론을 배우고, 다른 창업팀의 발표를 많이 보고, 가능하면 스타트업 안에서 직접 일해 보세요.
- 방법론 배우기: 텍스코어처럼 고객 인터뷰로 시장을 검증하는 프로그램이나 학교 창업 수업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 데모데이 영상 보기: 유튜브에서 액셀러레이터 데모데이 영상을 찾아보세요. 프라이머 데모데이 같은 영상에는 고객의 문제를 풀기 위해 창업한 팀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 스타트업 인턴 3~6개월: 가장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대기업은 조직과 역할이 잘 잡혀 있지만, 스타트업은 정신없습니다. 내일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직접 겪어 봐야 나중에 어떤 사람과 창업할지, 회사를 어떻게 운영할지 감이 옵니다.
🧭 그래서 제가 권한 순서는?
5년, 10년짜리 계획을 지금 세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대신 순서는 그릴 수 있습니다.
- 탐색: 학교 창업 수업, 창업지원단 프로그램, 미니 텍스코어와 텍스코어로 창업을 간접 경험하고, 관심 시장을 6개월 이상 들여다봅니다.
- 현장 경험: 기회가 되면 관련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해 봅니다.
- 결정: 그러고 나면 창업을 할지, 취업을 할지, 학교에 남아 교수의 길을 갈지 방향이 보입니다.
순서를 지켜 달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중에 "이동건이라는 사람이 괜히 바람을 넣어서 창업했다가 이렇게 됐다" 하면 곤란하니까요. 웃자고 한 말이지만 진심입니다. 이번 주에 해 볼 일도 정리해 드렸습니다.
- 학교 창업지원단에 찾아가 지금 신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특허 지원 조건 묻기
- "미니 텍스코어"로 검색해 남은 모집 공고 확인하고, 함께할 팀원 후보와 지도교수님께 이야기 꺼내기
- 관심 있는 데이터 거래 시장의 플레이어 10곳을 표로 정리하기(누가, 무엇을, 누구에게 파는가)
- 데모데이 발표 영상 5편 보고 "이 팀의 첫 고객은 누구인가" 한 줄씩 적기
🎛 덤: 교수님 연구실의 앰프가 알려 준 것
멘토링이 끝날 즈음 교수님 연구실에 놓인 오디오 장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어보니 전부 교수님이 직접 만든 것이었습니다. 반제품 보드에 아두이노로 코딩을 해서 완성하고, 앰프는 하나하나 납땜해서 만들었답니다. 재료비만 70~80만 원, 트랜스가 비싼 녀석은 100만 원이 넘는다고 하셨습니다. 부품도 세트로 파는 게 아니라 일일이 구해야 한다니, 이건 진짜 덕후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창업을 합니다. 좋아서 만들다 보면 부품을 팔게 되고, 사람들이 모여 공동구매를 하고, 같이 만들자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렇게 사업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도적인 삶을 원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창업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도 퇴직하시면 창업하실지 모르겠다는 농담으로 멘토링을 마무리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근처 초밥집 점심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 대학원 창업 지원을 맡고 있다면 무엇을 참고하면 좋을까?
- 결론보다 순서를 주는 멘토링: 대학원생에게 "창업하세요" 또는 "공부하세요"라는 답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작게 검증할 수 있는 다음 단계를 순서대로 보여 주는 편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 제도 정보는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텍스코어처럼 대학원생에게 맞는 사업은 공고 시기, 자격, 지원 규모를 구체적으로 알려 줘야 학생이 바로 움직입니다.
- 지도교수와 함께하는 자리: 이번처럼 교수님이 함께 앉아 있으면 박사과정과 창업의 병행, 특허 문제 같은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현실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학원생·연구자 대상 창업 진로 멘토링, 실험실 창업팀 고객개발 교육, 대학 창업지원단 프로그램을 기관 상황에 맞춰 설계합니다. 한국형 I-Corps 인스트럭터이자 초기 투자자로서, 연구실 기술이 시장을 만나는 과정을 현장 사례와 함께 다룹니다.
핵심 요약: 10월 27일 S대에서 박사과정 진학을 앞둔 AI 분야 대학원생과 창업 진로 멘토링을 했습니다. 박사와 창업은 병행하며 작게 검증한 뒤 고르면 되고, 기술은 하면서 확보하는 것입니다. 학교 창업 수업·창업지원단 → 미니 텍스코어 → 텍스코어 순서로 경험을 쌓고, 고객은 '개인'이 아니라 한 문장으로 그릴 수 있게 좁히며, 아직 없는 시장보다 이미 돈이 오가는 시장에서 반 보 앞서는 것을 권했습니다. 창업은 3~5년을 태울 각오가 필요한 일이기에, 결정은 탐색과 현장 경험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